일이 늦게 끝난 날 저녁, 퇴근길에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. 하지만 이미 폐점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마땅히 먹을만한 것도 없고, 피곤에 찌들어 멍하니 서성이고만 있었다. 장바구니를 축 늘어트리고 이런저런 상품들을 보며 별다른 목적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, 갑자기 누가 내 손을 잡았다. 뭐, 그래도 아이의 손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,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. 부모님이라고 착각한 건가 싶었다. 돌아보니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아이였다. 미묘하게 웃으며 [착각했구나?]라고 농담처럼 말을 건네자, 그 아이는 나를 올려다봤다. 조금 비웃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, [에엥?] 하고 대답해왔다.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상한 사건이 재미있어서, 그 아이와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이상한 억양으로 말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. 그러는 사이, 갑자기 눈앞에 여성이 나타나더니 [저기요.] 하고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내 팔을 잡았다. 이 아이 엄마인가 싶었다. 혹시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 변명거리를 열심히 생각했다. 생각해 보면 유괴범이라고 착각당할 상황이었으니까.. 그 여성은 아이를 향해 [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?]라고 냉정하게, 조금 지겨운 듯 말했다. [아니, 저도 어울려서 장난을 쳤으니까..]라고 당황하면서도 아이를 옹호했다. 하지만 그 여성은 [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?]라고 쏘아붙이고는, [이제 하지 말라고 했잖아. 약속했잖아.]라며 설교를 이어갔다.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아도 될 텐데 싶었지만, 집마다 다른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. 나는 멍하니 내 손을 양손으로 잡은 채로 계속 흔들고 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. 그러는 사이 아이는 [그런 거 몰라!] 하고 말하더니, 손을 놓고 도망쳐버렸다. 반사적으로 아이를 쫓으려던 순간, 갑자기 주변의 소음이 한순간에 밀려들어왔다. 그제야 방금 전까지 주변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이라도 된 것처럼 전혀 들리지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. 아이를 계속 보고 있었고, 아이가 뛰쳐나간 방향도 바라보고 있었기에 바로 쫓아갈 생각이었는데,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.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당황하고 있었는데, 아까 그 여성이 여태 붙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아주었다. [모르는 사람을 멋대로 따라가면 위험해요.] 그리고 그 여성도 어디론가 가버렸다. 그 후, 계산대에서 그 여성을 다시 발견했지만, 아이는 데리고 있지 않았다. 출처 : VK's Epitaph |